고려시대 무역의 발전과 주요 교역품
고려 시대는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기로, 대외 무역의 발달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고려는 특히 해양 교통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국가와 교류를 하였고, 이를 통해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교류를 이루어냈습니다. 이러한 무역 활동은 고려 사회의 발전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무역 발전
고려는 건국 이후 송나라, 거란, 여진 등과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국제적으로 그 존재감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특히 송나라와의 관계는 고려 대외 무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고려는 송의 발전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외교와 무역을 활발하게 추진했습니다. 사신과 상인이 잦은 왕래를 하며 상업 활동이 이뤄졌고, 유학생과 승려들이 송나라로 가서 지식과 불교 문화를 배워오는 등 다방면에서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초기에는 국가 주도의 공무역이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인 개인 간의 비공식 교류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건국 초기의 사무역은 국가의 개입으로 차츰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육로를 통한 교역은 주로 거란과 여진의 각종 방해로 인해 위험했기 때문에, 바닷길이 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벽란도라는 무역항이 큰 번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주요 교역품과 교역 국가
고려에서 송나라로 수출되는 품목은 금, 은, 인삼, 종이, 먹과 같은 다양한 물품이었으며, 반대로 송나라에서 수입된 물품은 주로 책, 약재, 사치품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교류는 고려 경제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사치품의 과도한 유입과 귀금속의 지속적인 유출은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고려 수출품: 금, 은, 인삼, 종이, 먹
- 송나라 수입품: 책, 약재, 사치품
거란과 여진과의 무역은 송나라와의 교류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거란과의 교역은 공무역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여진과의 교류는 사신이 공물을 바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가 북방의 불안을 완화하고자 했던 정치적 계산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거란은 은과 말, 모피 등을 가지고 와서 곡식과 농기구로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일본과의 독특한 무역 방식
일본과의 무역은 특유의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일본 상인이 고려 왕에게 자국의 토산물을 바치면, 고려 왕이 이에 대한 답례품을 제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는 고려가 일본과의 무역을 제어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일본으로부터는 수은과 유황이 도입되었고, 고려에서는 인삼과 곡식, 서적 등이 수출되었습니다.
팔관회의 역할
팔관회라는 대규모 행사에서는 송나라 및 여진과 일본의 상인들이 고려를 찾아와 왕에게 다양한 물품을 바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때 왕은 이들에게 답례품을 제공하고 공식적으로 무역을 허가하였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아라비아 상인들이 송을 통해 고려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들은 고려 사회에서 향료, 상아, 공작 등의 진귀한 물건을 소개하였습니다.
원나라와의 교류
고려 후기로 접어들면서 원나라와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면서 국제 무역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원의 간섭기에는 고려가 몽골 제국의 네트워크에 연결되면서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으나, 그 이면에는 금과 은의 대량 유출, 개인 자원의 유출 등의 부정적인 영향도 나타났습니다.
- 공녀와 노비의 원으로의 유출
- 대량의 금과 은 유출
공무역은 전통적인 외교 형식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왕과 사신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역량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무역보다 사무역의 규모가 훨씬 더 컸고, 고려의 상인들은 육로를 통해 요동을 거쳐 대도(현재 베이징)를 오가며 활발한 무역을 펼쳤습니다.
고려의 개방적인 사회
이러한 국제적인 교류 속에서 고려 사회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고려 속요 <쌍화점>에 등장하는 회회아비는 이슬람 상인으로 보이며, 그가 만두를 파는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고려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 상인이 고려의 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 사회가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고려 왕실에는 몽골 공주가 시집 오는 사례도 있었고, 몽골인과 서역인의 정착도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의 문화는 고려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고, 전통 혼례 때의 족두리, 오늘날의 소주와 관련된 술, 그리고 왕실에서 사용되던 ‘마마’와 ‘수라’와 같은 언어도 이 시기에 유입된 몽골어의 흔적입니다.

결론
고려 시대는 단순한 물질적 교환을 넘어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이, 물건들이, 그리고 문화와 언어가 자유롭게 교류하며 고려 사회를 더 넓고 깊게 만든 진정한 ‘세계와 통하는 나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가지며, 고려의 무역과 문화 교류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주 찾으시는 질문 FAQ
고려시대의 주요 무역 파트너는 누구인가요?
고려는 송나라, 거란, 여진, 일본 등 다양한 국가와 활발한 무역을 전개하였습니다.
고려 무역의 주요 상품은 무엇이었나요?
고려에서 주로 수출한 품목으로는 금, 은, 인삼 등이 있으며, 송나라로부터는 책과 사치품을 주로 수입했습니다.
일본과의 무역 방식은 어땠나요?
일본과의 무역은 양국의 교류를 통해 토산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고려가 일본을 통제하는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고려시대 무역에서의 사회적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무역의 활발함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고려 사회에 유입되었고, 이는 사회의 다원적인 특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원나라와의 무역은 어떠했나요?
원나라와의 관계는 고려의 외교 및 무역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지만, 그 속에는 자원의 유출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